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옹진반도 전투 (문단 편집) === 서부 방어선 === [[6.25 전쟁]]이 시작된 1950년 6월 25일 옹진반도 일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새벽인 4시 정각에 갑자기 붉은 [[조명탄]]이 새벽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발사됨과 동시에 이를 신호로 북한군은 삼팔선 북쪽에 미리 만들어놓은 포병진지에서 각종 화포를 포격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국군 방어선을 강타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었고 30분 후에는 포격이 일선진지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약 1개 대대 규모로 추산되는 북한군이 제1대대의 주저항선으로 밀어닥쳤다. 이미 북한군은 각종 방법을 동원해서 알아낸 대한민국 국군의 진지를 포병으로 정확하게 포격하는 바람에 모든 유선망이 절단되었으며 무선망까지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사실상 이 때부터 전선의 각 부대들은 독자적으로 싸워야 했으며 이는 제17보병연대도 마찬가지였다. 제1대대는 제1중대를 예비로 하고 제2중대를 두락산을 담당하는 서쪽에, 제3중대를 토끼고지를 담당하는 동쪽에 배치하였다. 2개 중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1개 중대를 예비대로 두는 전형적인 방어배치였지만 전쟁이 터지자 두 지역 모두 38경비 제3여단이라는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그냥 싸워도 불리한데 개전 극초반에 지휘관들의 엉성한 보고와 상황파악이 일을 더 키웠다. 제1대대장 김희태 소령이 잠에서 깬 시각은 오전 4시 15분으로 적의 포격이 시작된 뒤 15분이나 지난 시각이고 그나마도 포격음에 깨어난 상황이었다. 깨어난 후에는 포격이 있다는 상황을 즉시 상급부대인 제17보병연대 본부에 연락했으나 일단 상황판단을 보류하고 전방의 제2중대와 제3중대에게 경계철저와 적 포격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통상적인 명령을 내렸다. 이러다가 오전 4시 40분에 제3중대장으로부터 북한군 1개 소대가 담당구역 좌측인 토끼고지로 접근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30분이나 지속된 포격후에 오는 전방의 보고가 상당히 부실한 것도 문제가 있었으나 이런 보고를 받고 전후상황을 생각 안하고 '''국지전으로 판단하고 대대장 스스로가 적을 생포한답시고 제3중대 본부로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이동'''하는 개막장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막상 제3대대 본부에 제1대대장이 오자 토끼고지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으며 상세한 상황은 현지에 있던 제3중대의 소속 병사로부터 제2소대장 김호경 소위가 전사했으며 북한군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그 때서야 제1대대장은 현재 상황이 전면전임을 파악했다. 그러나 소수인원만 데리고 온지라 전선에 대한 실질적인 증원이 불가능했기에 제1대대장은 다시 대대본부로 돌아가는 삽질을 했고 그 사이에 오전 5시에 제2중대장 한혁 중위로부터 은동 정면에 북한군 1개 대대, 두락산 정면에도 북한군 1개 대대와 교전중이라는 연락을 끝으로 전방의 모든 부대와의 교신이 끊어졌다. 대대본부로 돌아온 제1대대장은 오전 5시 30분에서야 예비부대인 제1중대를 자동 방면으로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제17보병연대장에게 상황보고와 함께 제2대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전 직후 2시간이나 대책 지연이 계속되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북한군이 제1대대본부까지 위치를 알아내고 포격하는 통에 오전 6시에 직접 제1중대 지휘를 하려고 대대본부 앞으로 나온 '''제1대대장 김희태 소령이 개전 2시간만에 북한군 포격으로 전사하였다'''. 이로서 사실상 제1대대는 조직적인 저항능력을 상실하였다. 최전방에 배치된 제2중대와 제3중대는 결국 예비대 지원 없이 수중에 가진 병력만으로 각자 [[백병전]]까지 치르면서 싸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옹진반도 서쪽의 지형 특성상 방어에 불리한데다가 북한군의 병력이 더 많고 방어가 불가능한 서쪽으로 우회공격까지 들어가기 시작한데다가 기선까지 제압당해서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북한군의 후속부대가 [[기병]]까지 데리고 등장하면서 결국 부대는 완전하게 붕괴되고 잔여 병력은 분산해서 각자 알아서 철수하게 된다. 예비대인 제1중대의 경우에는 오전 7시 30분에 방어지역인 자동에 도착했으나 이미 그 때는 전방의 북한군이 국군 방어를 돌파하고 대대본부를 빈집털이해서 점령한 상황이었다. 연락까지 두절된 상황에서 주변에 안개까지 끼여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안개가 사라지자 자동적으로 자신들이 북한군에게 포위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2시간동안 포위공격을 당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제2대대의 지원으로 포위망이 뚫리자 제2대대와 합류해서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제1대대는 완전붕괴되었다. 중과부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제1대대장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예비대를 이용해서 전방의 병력들에게 보충을 해주거나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다면 이거보다는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